2010년 06월 24일
제 1권력: 자본, 그들은 어떻게 역사를 소유했는가(히로세 다카시)

기득권층의 인맥이 얼마나 무서운지 집요하게 파헤쳐놓은 책이다. 우리는 학교와 대중매체의 끊임없는 세뇌공작에 의해 역사는 계속 발전해왔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과거의 사회적 모순이 현대에 와서는 모두 사라졌거나,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개선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배의 본질은 달라진게 없다. 모건과 록펠러라는 두 신흥세력이 경쟁하다가 연합한다. 그 후 그들은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해 약자들을 먹어치우고 점점 자신의 영역을 불려나간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사회에 저지른 해악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전쟁을 일으키고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죽여가면서 그들의 금고에는 천문학적인 재산이 쌓여간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도 폭주를 계속하고 있다.
여기서 '모건'과 '록펠러'라는 고유명사를 고대, 중세, 근대 전 시대의 지배계층의 이름으로 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정략결혼으로 영역을 불려나가는 걸 보고있자면 내가 현대 사회에 있는지 중세의 장원에 있는지 구별이 안 갈 정도이다. 그간 내가 믿고 있던 역사의 진보에 회의감마저 들었다. 정말 약육강식이 인간의 본성인것만 같아 참담하기까지 했다.
몇해 전에 어떤 저명인사가 쓴 칼럼을 본 적이 있다. 그는 한국의 재벌을 비판하며 재벌은 영어로도 그냥 'jeabul'이라고, 다른 언어에 대치되는 명사가 없다고 조롱했다. 그뿐만 아니라 순수한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서구에서는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진다며 한국의 자본주의를 천민 자본주의라 비하한다.
근데 당신들한테 물어볼 게 있는데 말야. 외국 기업들은 한국처럼 문어발식 경영이나 족벌 경영을 하지 않고 오로지 능력에 따라 경영진이 결정된다고? (특히 이원복 교수에게)정경유착은 동아시아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웃기지 마라. 당신들은 문제의 본질은 고사하고 표면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 세계를 조종하는 골드핑거가 개입한 악행으로 현대사의 대부분이 물들어 있다. 모건-록펠러 연합이야말로 정치, 경제, 문화 모든 것을 지배하는 독점기업이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재벌가문이다. 이들에게는 정경유착이라는 표현도 너무 온건하다. 삼성이나 이들이나 본질은 전혀 다르지 않다. 다만 이들이 훨씬 더 견고하고 주도면밀해서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무엇보다 혼란스러운 건, 이 책의 내용도 어쩌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모건-록펠러 연합은 자신들의 지배체제에 도전하는 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어떤 사람들은 우연히 그 근처에만 갔을 뿐인데도 죽임을 당했다.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제물로 쓰인 자도 있었다. 일본이라는 조그만 섬나라의 반핵운동가 한 명 보내버리는 것은 일도 아닐텐데 왜 이런 책이 출간되게 내버려 두는 걸까? 그게 바로 이 책이 그들에게는 무시해버려도 좋을 정도로 미미한 시위에 불과하다는 증거이다. 실제로 이 책은 일반 대중에겐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올 상반기에 별다른 센세이션을 일으키지 못했다.
저자가 주요 자료로 쓴 '연감'이라는 자료의 신뢰성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저자가 책 속에서 주장한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면, 이토록 주도면밀한 자들이 연감에 자신들의 정체를 추적할 수 있는 실마리를 남겨놓았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 저자의 서술이 '00는 00와 혼맥관계로 이어져 있다. 과거 00의 수하였다. 00의 자리에 있는 동시에 00도 겸임하고 있었다.'등 단순히 관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일관되기 때문에, 어쩌면 과대해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은 그간 추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미국의 실세 '군수복합체'의 정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었으며, 무엇보다 표면 아래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눈을 키워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소위 진실을 밝혀준다는 책들은 그 정보의 출처를 믿을 수 없거나 아주 위험한 방향으로 독자를 유도할 위험성이 있다. 양서를 통해 비판의식을 갈고 닦은 후 가급적이면 그런 책에 의지하지 않고 표면만 보아도 본질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 by | 2010/06/24 09:31 | 감상 | 트랙백 | 덧글(1)



